전근대시절 외국과의 무역품이 사치스럽다 규제한 이유
인삼은 생산지 조선에서 살때와
일본서 구매가가 약 20배 정도 차이났다.
임진왜란전 조선에서 면포를 100%수입했을시기
조선에선 쌀0.5석이란 값싼 값에 팔리던 면포가
일본에와선 아무튼 자체 생산은되던
비단한필보다 비싼가격에 팔리기도했다.
※마진율은 12배 이상.
역시 중국선 명나라시기 남중국 지역서 어찌저찌 재배되던 사탕수수가
대운하타고 북경까지 올라오자 북경서민들도 차에 넣어먹는 싸구려식품이 되었을때
100%수입품이었던 조선의 경우 왕후조차 시장에 설탕이 없다고하자 못먹고
다음해에 문종이 눈물을 흘리며 소헌왕후제단에 각설탕을 바쳤다고하니
전근대엔 자국에선 제아무리 싸구려여도
외국으로 건너간 순간 미친듯이 비싸진다고 한다.
애초에 왔다갔다하는게 근대이전에는 엄청난 고역이었으니
유통비 + 손망실 비
당시 육로로는 물량이 제한되고, 그러면서도 느리고 마냥 안전하것도 아닌데 수로는 물량은 많아가도 날씨 예측 어렵고 사고났다하면 그냥 뭐 물건도 사람도 다 죽는거라 국경 건너면 값이 널뛰기 하는건 어찌보면 당연했을지도
후추, 도자기, 비단...
우마차 : 느리고 한 번에 움직일 수 있는 양이 적음+산적떼 및 맹수
상선 : 양은 많지만 기후에 민감함+해적 및 풍랑
대항해시대때 무역선 10척 띄워서 그중 9척이 폭풍으로 다 침몰해도
한척이 살아남아서 향신료 싣고 돌아오는데 성공하면
10배가 넘게 이득이 남앗다는 얘기 듣고 이해했지
후추만 해도 무역 어렵던 시기에는 비싼 사치품이었는데 15세기 들어서는 싸진 않아도 제일 흔한 향신료가 되버리고...
운반기간도 길고 비용도 높고 목숨도 오락가락 하는 상선이라 어쩔수가 없던거 같음
주식회사의 시초도 네덜란드에서 대양 무역 상선들 손망실이 7~80%씩 찍어버리니깐 화물권리를 증권 형식으로 만들어서 사고 팔던게 주식거래의 시초였고 그런데도 불티나게 팔린거 생각하면 기본 수익율이 1000%(10배)는 가볍게 찍어버렸다는거지
그 시절 외국과의 교역은 진짜 목숨을 걸고 하는 경우였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가격대가 확 치솟았고
거기에 냉장기술같은것도 부족하니 물품을 가져가도 맛이 가는 경우도...
인삼대왕고은은 일본 은화가 불량이 많아서 인삼 거래 전용화폐를 아예 따로 만들은거라 저거 아니면 받아주지도 않았다지.
그렇다고 중국하고 거래하기에는 바다 상황은 나쁘진 않았는데 그놈의 명나라가 해금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