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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수증 환자에게 물을 먹인다는건 지루하고 현학적임.
그럼 승하해
뒤주했나
??? : 내가 의술은 잘모르지만 인삼과 부자가 열을 올리는건 안다............
않이 의술 잘모르면 아무말을 하지마셔야
의술을 잘 모르는 영조도 명의로 만드는 이공윤 센세...
내가 의술은 모르지만은 겸손의 표현이고
실제로는 본문에 나온듯 다른 어의들이랑 상의끝에 나온 처방이고
실제로 효과가 있었음
1713년(숙종 39) 그의 의술이 자못 신기하다는 소문이 나자 도제조 이이명(李?命)의 추천으로 양산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그를 말을 보내어 불러들였다. 경종 때에는 도인승기탕(桃仁承氣湯)·구선남극단(?仙南極丹) 등의 약을 여러 차례 지어 올렸는데 이들 약은 독성이 강하였다.
1724년(경종 4) 광흥창봉사로 있으면서, 왕의 병환으로 임시 설치한 의약청(議藥廳)에 동참하였다. 그러나 진찰시에 여러 번 불참하거나 지각을 하였으며 성품이 경거망동하고 불성실하였으므로 벼슬을 삭탈당할 뻔하였다.
경종이 죽을 때에도 여러 의원들과 함께 의약청에서 어떠한 약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논의하였으나 다른 의원들과 의견 대립이 잦았다. 결국 영조 즉위 후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이공윤(李公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3643)
현대 한의사가 보기에는 아주 근거없다고 보는거 같지는 않더라
물론 ‘공격적’ 처방이라는 단서가 붙음.
이공윤이 자격이 없다는 것은 정확히는 내의가 아니었다는거고.
당시 조선시대의 의학이라는게 면허제도는 아니었던지라
이공윤은 방외의인으로 진료를 보았다고 함
이씨왕조의 고질병인 비만+고혈압+당뇨 이건 지금도 중환자야
저때 경구수액 있었으면 살았을까?
인삼이 탈수에 좋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