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북한 수립에 대한 오해와 사실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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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기에 북쪽지역은 사회주의 세력이 대세였나?
반대다. 오히려 민주주의 세력이 대세였다.
조만식선생이 이끄는 민주주의 계열이 북쪽의 대표적 세력이었다
거기다 평양이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릴정도로 기독교세력이 강세했던게 북쪽지역이었던지라 종교를 인정안하는 사회주의 세력과 잘 맞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소련이 들어오고 조만식세력을 호텔에 감금하는등 탄압이 시작되면서 많은 북쪽 민주주의계열 인사들이 월남을 하자 민주주의 세력이 축소되었다.
그래도 남은 소수의 인사들은 끈질기게 북한정권에 저항을 했었다.
2.김일성 세력은 북쪽 사회주의 세력의 대세였나?
아니다. 소련 없었으면 얘가 북한 먹는건 꿈도 못꿀 일이었다.
물론 김일성도 보천보 전투등의 항일활동으로 이름이 알려진 인사라 영향력이 없던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북쪽 사회주의 세력은 그전에 활동했던 국가에 따라 국내파, 연안파, 만주파, 소련파의 4파전으로 쪼개져 있었고 각 세력에 쟁쟁한 인사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중에는 그 유명한 중국의 대장정에 참여했던 인사도 있었고 여운형, 김두봉등 역사공부하면 한번쯤 들어볼만한 유명인사도 있었다.
심지어 김일성은 분류상 소련파도 아니고 만주파로, 이미 소련에서 나고자라 소련 고위직까지 오른 허가이같은 인사들도 있었다.
김일성은 중국에서 소련으로 건너간 후 소련에서 훈련을 받았던지라 이들보다는 소련물을 덜 먹었다.
하지만 소련 고위 인사들이 김일성을 더욱 중히여겨서 소련파들보다 더 밀어지게 된거였던거다.
이때문에 김일성은 소련을 등에 업고도 이들을 통합하는데 여간 애를 먹는게 아니었고, 통합과정에서 각 세력들 눈치를 보느라 대표자리를 양보했던적도 두어번인가 있었다
3. 토지 개혁이후 북한주민들은 김일성 정권에 찬성했나?
어느정도는 있었지만 반대세력도 여전히 거셌다.
토지개혁이후 실시된 북조선 도·시·군 인민위원회 위원 선거에서 반대표가 14퍼센트, 황해도 평안남도는 20퍼센트 이상이었다.
중요한건 이게 '공개투표'로서 소련과 김일성정권이 대세로 잡고 있는 상태에서 투표함 두개에 반대표 찬성표를 대놓고 던지는거였는데도 반대표가 20퍼 이상 나왔다는거다.
그러니 실제로는 반대세력이 훨씬 많았다는 소리다.
이에 충격먹은 김일성세력은 이후 통제를 더욱 엄격히 해서 이후에는 찬성표가 백퍼센트에 육박하게 되었다
이렇듯 북한정권 수립은 예상과 달리 쉽지 않았고 미소 냉전체제가 아니었으면 김일성 정권이 수립되는건 힘들었을것이다.
한줄요약 - 김일성은 소련 없었으면 북한 못 먹었음






김일성이 조트인 이유
기승전 소련덕분
애초에 6.25 go 사인도 스탈린이 해줘서 시작된 거지
일본이 부활할 거 알면서도 전쟁 일으킨 놈
물론 소련이 알려줬겠지만
왜 지속적인 숙청을 했는가? 를 보면 알수 있다
땡크 300대만 빌려주면 적화통일 시키겠다고 기름진 혓바닥을 살살 굴려서
스탈린에게서 땡크 300대를 빌리는데 성공한게 결정적이였지
소련 스탈린 지원 없었으면 각 파벌 쟁쟁한 인물들이 많아서 독재자는 커녕 한자리 하기도 벅찼을텐데
핵 개발 전까지는 납작 엎드리다가, 긴빠이 성공하자마자 바로 한반도로 시비 걸더라
3대가 ㄱㅅㄲ인데 빠는 놈들은 무슨생각인지 모르겠슴
소련은 영향력있는 이가 아니라 바지사장이 필요했을테니까.
원래 공산당은 점령지 현지에서 인기있는 유력자 싫어함. 이끄는 당은 하나여야하거든.
베트남도 전쟁 이기고 남베트남 남은 인사들 쫓아냈음.
그리고 6.25 이후 숙청과정에서 소련이랑 중국이 각자의 사정으로 자기네 파벌을 내다버리는 바람에 우리가 아는 독재정으로 ..
괴뢰로 불리는 이유
김일성이 개ㅆ민족반역자ㅅ끼인 게
동족을 쳐 죽여댄 것도 죽여댄 거지만
납치 공작으로 남한의 엔간한 민족주의자들을 죄 끌고 가버려서
휴전 후엔 남한에 남은 게 골수 반공 아님 친일파 밖에 없게 돼버림
그러니 친일파가 나라를 장악했단 소리까지 나오는 거였고
여운형을 북한에서 활동한 인사라고 썼네 좌파로 분류되는 인물이긴하지만 중립성향의 온건좌파로 분류되며 각진영의 신뢰를 얻은 인물임 글쓴이 공부좀 더해야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