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입주민들의 의견 청취를 시작하다.
관리실과 싸우다 보니 한 가지를 깨달았다.
혼자 싸우는 사람은 쉽게 '예민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둘, 셋 모이면
그때부터는 '문제 제기'가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연대할 사람들을 찾기로 했다.
퇴근하면 엘리베이터 앞을 서성이고,
주차장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하루 서너 명씩 말을 걸기 시작했다.
"혹시 관리실이랑 언쟁 있으셨던 적 있으세요?"
"주차 문제로 불편하셨던 적은요?"
대부분은 비슷한 반응이었다.
"불친절한 건 맞죠."
"관리소장? 항상 목에 힘 잔뜩 들어가 있잖아요."
"기분 나쁘면 사람 함부로 대하는 스타일이긴 해요."
하지만 나처럼 크게 부딪힌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도 예전 관리실보다는 낫지 않나요?"
"왜요?"
"예전 관리소장은 동대표랑 20년 가까이 해먹으면서 영수증도 제대로 안 남겼다잖아요."
순간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지금도 시스템은 낡았고 관리 방식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보다 더 심했다는 건 대체 어떤 세상이었던 걸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상한 공통점도 발견했다.
지금 관리실에 불만은 있지만, 예전이 워낙 심했다는 기억 때문에 다들 "이 정도면 참을 만하지." 하고 넘기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매를 맞다 보니 약하게 맞는 건 괜찮다고 느끼는 사람들처럼.
그게 더 씁쓸했다.
더 놀라운 건 관리실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주민도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입주민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는 뭘까?
답은 하나였다.
관리비
관리비만큼은 차가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모두 매달 내는 돈이다.

나는 K-apt 에 접속해 비슷한 규모의 단지들과 우리 건물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숫자를 하나씩 정리하다가 눈을 의심했다.
우리 단지 관리비는 ㎡당 2,702원.
비슷한 단지 평균은 ㎡당 1,416원
거의 두 배였다.
세대 수가 비슷한 곳, 평형이 비슷한 곳, 주상복합인 곳까지 비교해 봐도 우리 단지가 높았다.
관리비 내역을 들여다보니 특히 경비비가 눈에 띄었다.
'이건 좀 이상한데?'
경비 인원이 아주 많은 것도 아니고, 특별한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경비 관련 비용은 유난히 높았다.
경비비를 부풀려두고 뒷돈을 빼가고 있나?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숫자만으로 문제를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는 충분히 궁금해할 만했다.
더 답답했던 건 이곳 운영 방식이다.
요즘 아파트들은 관리 앱 하나로 관리비 조회, 주차 등록, 헬스장 결제, 공지 확인까지 다 한다.
그런데 여긴 앱은 무슨, 웹사이트 하나 없다.
이곳은 아직도 관리실에 직접 찾아가 계좌이체를 하고, 직원이 수기로 장부를 정리하는 방식이다.
관리비를 송금할 때 호수를 안 적으면 직원이 일일이 입금자를 찾아 헤매고 실수도 잦다.
호수별 계좌라는 편리한 시스템이 나온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이런 방식이라니.
예전에 살던 아파트와 비교할수록 시대가 10년은 멈춘 것 같았다.
단순히 시스템이 낡아서일까.
아니면 일부러 바꾸지 않는 걸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아파트 관리 앱에는 게시판 기능도 있다.
입주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질문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는 그런 공간이 없다.
혹시... 그래서 앱을 도입하지 않는 건 아닐까.
물론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은 점점 커졌다.
나는 비교표를 만들어 게시판에 붙였다.
'우리 단지 관리비는 왜 평균보다 높을까요?'


다음 날부터 다시 주민들을 붙잡고 물었다.
"관리비 비싸다고 생각하세요?"
열 명 중 아홉 명은 "비싸죠."라고 답했다.
한 명은 "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냅니다."라고 말했다.
모두 비싸다고 느끼지만 누구도 이유는 몰랐다.
그래서 또 설명을 시작했다.
평당 관리비가 무엇인지, 잡수익이 무엇인지, 주차장 수익은 어디에 쓰이는지.
그런데 생각보다 '잡수익'이라는 단어조차 처음 듣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했다.
하루에도 같은 이야기를 몇 번씩 반복했다.
인터넷 게시판 하나만 있었어도 글 한 번 올리면 끝났을 텐데.
이 건물에는 그런 공간이 없었다.
결국 내가 게시판이 되고, 내가 공지사항이 되고, 내가 고객센터가 됐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사람을 붙잡고, 주차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조금씩 주민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쌓이기 시작했다.
"전에 복도 끝집에 짐 좀 치워 달라고 했더니 경리 직원이 엄청 퉁명스럽게 말하더라고요."
"민원 한 번 넣었더니 그다음부터는 제 호수까지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갈 때마다 분위기가 싸늘해요."
"관리실은 입주민을 손님이 아니라 귀찮은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아요."
하나같이 큰 사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작은 불쾌함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다들 불만은 있었지만 굳이 싸우고 싶지는 않은 눈치였다.
어쩌면 나처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특이한 걸지도 몰랐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은 상상하기 어렵고,
상상하지 못하는 일에는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나도 전기차 충전기 하나 물어보러 관리실에 가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무것도 모르고 평범하게 관리비만 내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주민들에게 몰라도 됐을 갈등을 알려 주는 사람일까.
아니면 모두가 알아야 할 문제를 알리는 사람일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매일 저녁이면 또 밖으로 나갔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이 건물에는 젊은 학생들도 생각보다 많이 살고 있었다.
"주차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희요? 차가 없어서요. 하하."
"관리실에서 이런 일이 있었거든요."
그러자 한 중년의 신사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전혀 몰랐던 일이네요. 올림픽공원에서 시위하는 우리 청년들 같네요. 제가 응원하겠습니다. 화이팅"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났다.
내가 정말 그렇게 보였나 보다.
전기차 충전기 하나 때문에 시작한 일이 어느새 혼자 하는 시민운동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관리실 게시판에 새로운 공고가 붙었다.
'무단 게시물 부착 금지.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 및 의혹성 게시물 게시 금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게시물은 붙이자마자 떼어 가면서
회수하라는 연락 한 번 없더니 이제 와서 이런 공고를 붙인 것이다.
'익명의 게시물?'
나는 포스트잇 하나를 꺼내 그 공고 아래 붙였다.
'그런데 관리실 직원들은 왜 익명으로 근무하나요?'
이 건물 관리실 직원들은 이름표도, 직원 명단도 없다.
여기는 아파트 단톡방이 없는데
최근에 당근에 채팅방이 생겼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게시판 사진을 올리며
"저게 무슨 일이냐"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관리실은 당근채팅방을 의식한듯 또 다른 공고를 붙였다.
제목은 '공개 질의에 대한 답변'
하지만 읽어 보니 질문에 대한 답변은 몇 줄뿐이었고, 대부분은 나를 겨냥한 듯한 내용이었다.
"모든 절차는 공정하게 진행되었다."
"모든 업무는 관련 규정에 따라 적법하게 이루어졌다."
비슷한 말만 반복됐다.
정작 내가 제기한 의문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었다.
게시판 앞에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혼자 중얼거렸다.
"이제 정말 시작해보자는 거네."
그 순간 직감했다.
이 공고는 관리실 혼자 결정해서 붙일 수 있는 성격의 문서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이 게시를 알고 있었고, 누군가는 허락했을 것이다.
이제 내 상대는 관리소장 한 사람이 아니었다.

#8 : https://www.bobaedream.co.kr/view?code=freeb&No=3429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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