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종은 왜 고려사에서 고려의 최악의 암군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가?
고려의 의종은 고려 암흑기의 시작을 알린 무신 정변을 촉발시킨 원인으로 손꼽히는 국왕입니다.
실제로도 문관과 무관들의 힘과 권력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못하도록 밸런스를 잡는데 실패한 국왕이었고요.
의종은 24년간 재위에 있으면서 그의 재위 기간 말년에 촉발된 무신 정변으로 인해서 암군으로 손꼽히고 있지만
의종의 암군으로서의 문제는 이것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24년의 재위 기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게 문제였습니다.
의종의 아버지인 인종 시기에는 인종 자신이 암군이라고 불릴 정도의 국왕은 아니었지만. 이자겸의 난과
서경 천도 운동에서 비롯된 묘청의 난 등 고려의 혼란기가 도래한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고려의 하락기나 침체기가 시작된 것이 인종 시기였지만 인종 자체가 암군인 국왕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인종의 아들인 의종이 어떻게 통치를 하느냐에 따라서 고려는 다시 반등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종은 이렇게 중차대한 시기에 국왕이 되었음에도 무려 24년이라는 재위 기간 동안
사치와 향락에만 빠지고 이것에만 몰두하여 국정을 전혀 돌보지 않았습니다.
즉, 국왕으로서의 할 일은 안하고 놀기에만 바쁜 것이 바로 의종이었다는 것이죠.
더욱이 의종이 고려의 국왕으로서 통치하며 재위하던 당시에는 동아시아 국제 정세가
고려에게 유리했는데요, 금나라는 선왕 시절 여진정벌 같은 원정전으로 견제를 해줬고
송나라는 그런 금나라에게 정강의 변이란 치욕을 맞이했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금나라는 주변국들을 제압하지 않은 상태로 중국의 중원으로 들어왔기에
주변국들에 대한 통제력이 요나라보다도 못했다. 따라서 주변국들에 제대로 간섭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금나라는 의종이 쫓겨난 이후 조위총의 난이라는 본인들과 내통을 시도한 반란이 터진
절호의 기회에도 고려에 쳐들어오지 못할 지경으로 고려를 우습게 볼 수 없었습니다.
중국이 분열되어 있다는 것은 한반도를 기반으로 한 왕조 국가들에게는 항상 기회였는데요,
이를 십분 활용하여 전성기를 맞이한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고구려였습니다.
중국이 분열되어 있을 때 미천왕은 한사군을 축출하였고, 이후 광개토대왕이 요동을 확보했으며,
후대의 국왕들은 요택과 천산산맥 등으로 인해 천혜의 요지였던 요동에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하여
나중에 통일된 중국의 통일 왕조 국가들인 수나라, 당나라가 고구려에 쳐들어갔을 때도 굉장히 고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의종은 중국이 분열된 이 기회를 틈타서 만주 방면이든 요동 방면이든 영토를 확장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의종은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흥청망청 놀고 먹는 일에만 몰두하느라 고려의 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내치를 잘 다지는데에 힘쓰며 고려를 다시 중흥시킨 군주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고요. 즉, 의종은 중국이 분열기이고 혼란기였던 이 시기를 오히려 만주나 요동 방면으로
영토를 넓히거나 내치를 잘 다지고 발전시키는 절호의 기회가 아니라, 위기로 만드는 무능한 국왕이었다는 얘깁니다.
의종은 결국 말년에 천민 출신인 이의민에게 척추가 휘어지고 등뼈가 부려저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고려의 몰락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그는 이렇게 죽었고 그에 걸맞는 사필귀정, 인과응보스러운 결말을 맞이했죠.
종합해보자면, 의종은 고려가 다시 반등할 수 있는 기회를 여지 없이 날려버린 최악의 암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반도에 사는 놈이 만주를 노리지 않다니 암군이 맞다
윤관의 정벌 때보다 훨씬 좋은 상황이었다.
정벌을 안했다면 내정에 신경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도 않았지
대충 경축 아무것도안함 짤
역사에 만일은 없다지만 저때 금나라 조금이라도 조지도 양토 좀 많이 얻었다면 몽골이 호오? 정벌할놈이 또있네? 전력 투사 간다 이러지 않았을까 싶어
조선시대에도 조선 만력제 순조가 있었지
거제도에 있는 폐왕성이 의종 관련된 유적이지. 폐왕이 갇힌 성이라고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