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이는 왜 평생 가택연금을 당했을까?
출처 책인 마지스테리아란 책의 표지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죽을 때 까지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갈릴레이는 친구로 마페오 바르베리니란 추기경이 있었고, 교황인 바오로 5세도 그를 극찬했을 정도였다. 후원자로 코시모 대공을 가지고 있었다.
즉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영구 가택연금이란 굉장히 큰 벌은 받기가 힘들다. 참고로 종신 가택연금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3년에서 8년이면 풀려난다 그런데 갈릴레오는 진짜 말 그대로 종신이었다. 이건 정말정말 큰 벌이다.
그러면 이러한 종신 가택연금을 받게 된 이유는 뭘까?
갈릴레오 본인의 성격이 이 모든 것을 일으키게 만들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갈릴레오는 외교적인 성격이 절대 아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말을 했다
'갈릴레오는 논쟁에서 지느니 친구를 잃는 편을 택했고, 그의 생각을 조심스래 긍정하는 반응조차 격렬한 충돌로 바꾸어놓는 재능이 있었다.'
이건 엄청난 재능이었는데 대화(갈릴레오의 책 이름)로 인한 종교재판에서 그의 편을 들려고 나온 그라시 신부가 이런말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에게 가혹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그의 주장들이 지닌 강점을 납득할 수 있게 하려고 애를 쓸 만큼 썼다. (...) 하지만 그는 자신의 천재적 재능만 너무 사랑하고 다른 이들은 전혀 존중하지 않아 스스로를 망치고 말았다. 모두가 그를 벌하고자 모의한다는 사실에 놀라서는 안된다.'
다시 말하지만 그의 편을 들려고 나온 사람이 한 발언이다.
평소에도 그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마치 논거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로 판단하다. 어느 정도냐면 원래 예수회 교수들도 갈릴레오를 지지했다. 하지만 시금저울이란 책에서 선도적 수학자들을 지나치게 공격해서 결국은 그에게 소원해졌다.
이렇게 깊게 파고들면 좀 아는 사람들은 카치니가 갈릴레오와 다른 수학자들을 이단으로 고발하는 부분은 어떻게 설명할거냐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문제가 없었다. 물론 갈릴레오 본인은 놀라서 이례적으로 어조를 누그러뜨리고
성경의 어휘의 축자적 의미를 따를 경우 거짓 이란 단어를 사실과 달라 보인다 라는 단어로 엄청나게 굽히기 까지 하였다. 하지만 종교재판소는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재밌는 점이라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갈릴레오는 교회와 극렬하게 싸우는 투사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후원자인 코시모 대공의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그를 잘 압니다.(...) '매우' 경건하지는 않더라도 그는 충분히 경건한 사람입니다.'
여기까지보면 갈릴레오는 이단 혐의로 종신형까지 받을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외교적이지 못하고 반대파들을 싸그리 멍청이로 몰며, 이 멍청이로 모는 것엔 지위따윈 상관이 없었다.
자신의 반대파 중 대공비가 있는데 그 대공비를 주된 청중으로 삼아 무지하고 위선적인 적들에게 항의하는 방식을 선택하는(다행히도 대공비에게 보낼 편지는 출간되지 않았다.) 갈릴레오다. 진짜 뒤 따윈 없다.
재밌는 사실은 연금 전에는 상황이 꽤 괜찮았다. 교황이 우르바노 8세로 바뀌고 갈릴레오는 시금저울이란 책을 교황에게 헌정하였으며, 갈릴레오는 교황을 6차례나 알현할 수 있었고, 두개의 메달을 받고 그의 아들에게 연금을 주겠단 약속까지 받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갈릴레오가 연금까지 당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이제 갈릴레오가 종신연금을 당할 때 까지의 상황을 말해보자
갈릴레오의 연금은 대화라는 책으로 인해 벌어진다. 교황 우르바노8세의 변덕이 영구 가택연금에 큰 영향을 끼친다.
우르바노 8세라는 교황은 생각보다 왔다갔다하는 성격이었다. 정말로 변덕이 좀 심한 사람이었다. 우르바노 8세는 자신의 지위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점성술의 불길한 예언을 너무 신경썼다 오죽하면 교황의 죽음을 예견하는 점술을 금지했다.
갈릴레오는 새로운 책인 대화를 발행했다. 우르바노 8세 본인의 인정도 받았고 그때까진 분명히 멀쩡한 책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상황이 엄청 크게 바뀌었다. 이는 앞서 말한 교황이란 중요하고 대단한 사람의 너무나도 심한 변덕 때문이었다.
대화라는 책이 갈릴레오에게 어떤 의미인지 잠깐 살펴보자. 이 책은 갈릴레오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책이었다. 코페르니쿠스와 관련된 논쟁에서 자신이 승리할 엄청난 기회를 얻은 책으로 여겼다.
갈릴레오는 피렌체에서라도 출간하기 위해 인가를 받으려고 로마까지 갔다. 그런데 좀 더 큰 것을 얻었다. 바티칸의 검열장관의 서면 보증을 받았다. 로마에서까지 출간이 가능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책은 출간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교황의 변덕이 다시 말썽을 부린다. 대화라는 책을 보면 우르바노 8세로 보이는 듯한 인물이 있는데 교황은 이 인물을 통하여 자신에게 공개적으로 모욕을 하게 했다고 읽은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갈릴레이에겐 적이 많았다. 그리고 모든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반대편들은 모여서 갈릴레오를 죽이려든다.
간단히 말하면 전국적인 고로시 운동이 펼쳐진 것이다.
물론 갈릴레오가 조금 유했다면 이 정도 고로시 운동은 펼쳐지지 않았을 것이다. 추기경도 친구인데다 재판중에 갈릴레오를 위해 재판정에 증명서까지 보낼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펼쳐진 고로시 상황은 어쩔 수 없었다. 갈릴레오에게 불리한 온갖 증거들이 다 종교재판쪽에 다 넘어갔고 20년동안 교리를 위반한 사람으로 되버렸다. 즉 나락의 나락까지 가버린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 방법은 있었다. 교황은 마지막의 마지막에도 자신의 발언 철회 선언을 하면 강력한 이단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였다. 그러한 기회도 주었고
하지만 갈릴레오는 자신의 말을 철회할 바에야 감옥에 갈 사람이었다. 자신의 의견을 철회하지 않았고 그는 영구적인 자택연금에 들어갔다.
보면 알겠지만 갈릴레오의 성격이 조금만 유순했다면, 조금만 외교적인 수사도 할 줄 알고 반대파도 조금은 존중했다면? 영구적인 가택연금은 없었을 것이다. 조금 유하기만 했다면....
이 부분은 정말 저자의 말이 맞다. 갈릴레오는 엄청난 재능이 있었다. 극렬한 적을 만드는 재능이.....





이새낀 그냥 키배가 좋음 ㅋㅋ
갈릴레오 갈라치기
그런 성격이였으면 현대에 와서 이렇게 글로 안쓰여지지
사람들 기억에도 별로 안 남았을거야
교회 측이 연주시차 지적하니 어버버 거리고 가설로 그치고 실증은 못한 양반이라 콜롬버스처럼 거품이 좀 심한 양반임
업적이 없냐면 없는건 아니긴 한데...
그래도 내가 옳다
업적도 파보면 뭔가 존나 애매함
유명한걸로 유명한 양반
그러니까 요즘 태어났으면 진중권 됐을거란 소리잖아
하지만 대부분은 종교가 과학을 죽인 숭고한 이로 희생된 이들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고 .. 이거가지고 이 악무는 애도 종종 보이고 무신론자들이
신이 없다는 자신만의 신앙을 세우기 위해 자주 써먹음 참 어이없는 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