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은 어떻게 밀가루의 상징인 도시가 되었을까?
1910년대를 기점으로 경부선과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대전역은 중간에서 영남과 호남 지역을 잇는 물류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에 생산되는 전국의 모든 물자가 대전역에서 머물렀다가 서울과 영남, 호남 지역으로 유통이 됄 정도였죠.
그런데 대전이 밀가루의 상징인 도시가 된 계기는 바로 1950년에 발발한 한국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이 한국전쟁이 발발한 한국에 미군을 파견하게 되면서 구호 물자를 한국에 나눠주기 시작했는데요,
그 구호 물자의 중심이 되는 식재료가 바로 밀가루였습니다. 그래서 미군에 의해서 한국에 밀가루가 많이 보급되었습니다.
한국에 파견된 미국은 대전역이 한국의 물산이 중간 지대에서 한 곳으로 모이는 물산의 중심지라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미군이 대전에 밀가루 창고를 지은 이유는 바로 대전이 경부선과 호남선이 교차하는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라서
전국에 밀가루를 보급 및 배급하기가 쉬운 물류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전역 바로 옆에 대규모의 밀가루 창고를 지은 것이고요.
이 때문에 대전에 거주하는 대전 사람들과 전쟁통에 북한에서 대전으로 넘어와서 정착하게 된 실향민들은
미군에게서 배급 받은 밀가루로 요리를 해먹기 시작했는데요, 이게 바로 수제비였습니다.
그래서 대전에서는 저 때 당시를 기점으로 대전 사람들과 대전에 정착하게 된 북한 출신의 실향민들이
집에서 미군에게 구호 물자로 배급 받은 밀가루로 수제비를 요리해서 질리도록 먹었다는 경험담이 꽤나 많았습니다.
아무튼 이 덕분에 대전에 사는 대전 시민들은 밀가루를 배급 받기가 매우 쉬웠고,
자연스럽게 밀가루는 대전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배고픔을 해결하기 쉬운 매우 친숙한 식자재로 각광받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대전에서 미군이 대전역의 밀가루 창고에서 배급해준 밀가루로 인해서 수제비 요리가 발달하면서
함께 발달사기 시작한 요리가 바로 칼국수였습니다. 게다가 그와 더물어 1960낸대부터는 정부에서 혼분식을 장려하기 시작하면서,
대전에서는 칼국수 요리가 발달할만한 토대가 갖추어지기 시작했죠. 그래서 대전이 얼마나 칼국수의 도시냐면
대전에서만 무려 700개가 넘는 칼국수집이 대전에 몰려있을 정도입니다.
1956년 당시에 성심당의 창업주인 임길순 씨가 대전에 불시착하면서 대흥동 성당의 신부님으로부터
밀가루 두 포대를 받았다는 일화는 워낙 많이 잘 알려진 일화로 유명한데요.
이 밀가루 두 포대도 한국 전쟁 당시에 미군이 지은 대전역의 밀가루 창고에서 배급 받은 밀가루였습니다.




















































수제비 땡긴다..
근데 글 초반부 사진자료가 중복된듯 ㅋㅋ
아,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자가 틀린건가? (소근소근)
1900년대 이전엔 대전보단 청주 천안 쪽이 더 큰 지역이라 그랬던가
강점기 전후로 일본이 물자 수탈하려고 철도 깔 때 허브로 삼은게 대전이라서 컸다고 들은거 같은데
조선시대만 해도 충청도 중심지는 충청감영있는 충주였으니
수제비 존나 먹고 싶다 ㅜㅜ
아 그래서 칼국수 맛집이 많구나?
맛집 이전에 칼국수 가게 자체가 진짜 흔함
과장 좀 보태면 한블럭마다 칼국수 집이 하나씩 있음 ㅋㅋㅋㅋ
수원 올라오고 나서 칼국수 집이 이렇게 없었나 싶더라 (반경 2km 안에 전문점이 3~4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PD야 빵이 그렇게 부끄러웠더냐
대전역 근방에 가면 오래된 분식집이 많다. 그리고 메뉴엔 꼭 칼국수가 있고
피난민 많고 운송 편하니까 생긴 구포국수
이런거처럼 일제강점기 전쟁경제나 한국전쟁때문에 생긴게 많지
대전에서 살땐 진짜 집근처에 칼국수집 많아서 존나 행복했는데 독립하고 타지에서 사니깐 찾기 힘듬...
아 칼국수 먹고 싶다
진짜 칼국수집이 당연히 있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