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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무도우.. | 11:09 | 추천 7 | 조회 73

[유머]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기차 사고 레전드 +73 [3]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72574254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기차 사고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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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역 폭발 사건

 

1977년 11월 12일 오후 9시에 현재의 익산시가 된 이리시의 이리역에서 발생한 사건임

 

현재 한화 그룹의 롸끈하기로 유명한 김승연 회장의 아버지인 김종회 회장이 창업한 한국화에서 

 

다이너마이트와 뇌관 총 40톤 가량의 고성능폭 폭발물을 기차에 실어서 광주역으로 운송하고 있었음

 

근데 폭발물들을을 보낼 때 같이 간 호송원이 화약, 폭발물에 대한 자격증이나 교육을 받은 적 없는 무자격자인데다

 

법적으로 뇌관과 폭발물, 화약을 함께 운송할 수 없지만 그냥 같은 칸에 넣었고...

 

그렇게 다이너마이트 22톤, 초산암모니아 상자 5톤, 초안 폭약 2톤, 뇌관 상자 1톤이 실린 열차가 출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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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당시엔 철도 요원들의 부패가 심해서 이동할 때마다 뇌물을 줘야 했는데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기차를 멈춰세워서 역에서 길면 하루가 넘도록 역 내에서 대기하도록 만들었음

 

그리고 뇌물을 많이 주면 그만큼 빨리 기차를 보내주는 비리 관행이 있었음

 

법적으로 폭발물, 화약등은 역 내 대기가 불가능 하며 무조건 보내야 하지만...

 

 철도 요원들이 뇌물을 받겠다고 폭발물이 가득 든 기차를 멈춰 세웠고

 

이 때문에 이리역을 지나려다 발이 묶여 열 받은 호송원이 대기를하다 나가서 술마시고 돌아와서

 

폭발물이 있는 칸에 촛불을 킨 후 침낭을 깔고 자버림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기차 사고 레전드_1.jpg




그리고... 호송원이 자던 중 초가 넘어지면서 화물에 불이 붙게되자 자고 있던 호송원이 깨어나 

 

급히 침낭을 휘둘러 불을 끄려다 침낭에 불이 붙어서 오히려 불이 커짐

 

일이 커지자 호송원과 뇌물 때문에 기차를 세웠던 부패한 철도 요원들은 

 

폭발물 칸에 불이 붙은 것을 알고 그대로 같이 도망침

 

그냥 도망친 것도 아니고 주위에 아무런 대피 명령이나 상황을 알리지 않고 도망침

 

그러다 철도 검수원들이 불이 난 것을 보고 뒤늦게 모래와 물을 가져와 불을 진압하려 했으나...

 

결국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최초 사망자들이 발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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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의 파편이 1킬로미터 바깥에서 발견되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폭발은

 

폭발 중심지에 깊이 10m, 지름 30m의 크레이트가 생겼고 500m 이내의 건물들을 전부 무너트림

 

당시 이리역 부근의 건물들은 판자촌들이어서 그 충격을 못 이기고 죄다 무너지면서 피해가 더 커졌는데

 

폭발과 폭발의 여파로 인한 건물 붕괴와 날아간 파편 등으로 총 59명이 사망하고 

 

중경상자는 1158명에 7800여명 정도의 이재민이 생김

 

 

 

불행 중 다행으로 이리역으로 오던 다른 기차가 있었는데

 

당시 그 기차의 기관사가 통표 ( 간단하게 말하자면 통행 허가 표식 )를 가져가는 것을 깜빡해서

 

출발이 지연되면서 승객 600명이 타고 있는 기차는 제 시간에 이리역에 도착하지 못하여 화를 피함

 

또한 같은 이리역에 있던 유조 열차 기관사가 열차 내 화재를 알아채자마자

 

그대로 열차를 움직여 다음 역으로 대피시킨 덕에 피해는 더 커지지 않고 끝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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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무자격자 호송원 신무일과 뇌물을 요구한 이리역 역무원 2명이 추적 끝에 결국 잡혔고 

 

당시 한국 화약의 긴부 7명이 기소되었음

 

하지만 최종적으로 한화 간부들은 무혐의 처리 되었고 

 

역무원 징역 2명은 10개월, 신무일만 주민들의 선처 등으로 징역 10년 선고로 끝남

 

이후 한화는 피해 복구 비용으로 130억을 국가에 헌납하고 다이너마이트 생산 중단을 결정하였으며

 

인천 공장을 충남으로 옮기며 기존의 화끈한 경영보다 안전 경영을 추구하게 됨


 

 

한국 최악의 열차 사고 사건 중 하나_1.jpg

 

 

 

근데 왜 이렇게 형량이 낮은가? 라고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일단 북유게 이슈로 한화를 봐주는 자세한 부분은 빼고 말을 하자면..




이 사건으로 이리역 부근의 판자촌이 폭발 충격으로 인해 말 그대로 싹다 물리적으로 밀려나가고 

 

판자촌 자리에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이리시는 오히려 흥하게 됨


이리시 최초의 주공 아파트인 모현 아파트도 이 사건 이후 재개발로 들어선 것이 대표적인 예시


게다가 당시 이리역 근처에 판자촌을 중심으로 홍등가가 성행하면서 우범지역이 되자


지역의 큰 골칫거리였지만 폭발로 싹 날아가고 난 후

 

정부 주도로 도로가 커지고 아파트 단지와 인프라가 마구 들어오며 일자리도 생기고 땅값도 덩달아 뛰게 되자

 

이리 시민들 사이에선 오히려 신무일 선처 해주자는 여론이 생김

 

 

마지막으로 직접 피해 당사자인 판자촌에 살았던 이재민들은 이리시 밖으로 여기저기로 흩어지기도 했고 

 

워낙 가난한 사람들이다보니 재판이니 뭐니 하기엔 

 

아는 것도 적고 변호사 선임할 돈도 없고 정부에서 대충 묻으려는 형국이다보니

 

결국 피해 받은 소수 의견들은 묻히며 그렇게 뭉개짐

 

 

이후 북유게 이슈로 딜을 한 한화 간부들과 선처 여론을 받은 역무원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고 

 

신무일도 선처 여론으로 형기를 다 채우지 않고 나오게 됨

 

참고로 이리시 하면 익숙하지 않을텐데 

 

1995년에 익산군하고 통합되면서 이리시 이름이 날아가고 지금의 익산시가 되었고

 

이리역도 곧 익산역으로 바뀌게 됨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기차 사고 레전드_2.jpg

 

 

전북 익산의 그 익산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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