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위스키의 비밀
요즘 법조계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농담이 돈다.
“오늘도 법원 가야지.”
물론 그들이 말하는 법원은 서초동이 아니라 바(Bar)다.
그들의 법정은 카운터 위에 있고, 판결은 얼음 위에서 내려진다.
‘법원 위스키’라 불리는 술이 있다.
정식 명칭은 버번 위스키(Bourbon Whiskey).
미국 켄터키에서 태어나, 옥수수 향을 품고 바다를 건너온 술이다.
그런데 이 버번이, 한국에선 ‘법원’으로 불린다.
처음엔 단순한 말장난이었다.
버번(Bourbon) ? 발음이 “법원”과 비슷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 깨달았다.
이 농담엔 어딘가 진실의 증류수가 들어 있다는 걸.
법조인들의 세계는 냉정하다.
판결문엔 감정이 없고, 서류엔 여백이 없다.
그러니 퇴근 후 그들이 찾는 건 조문(條文)이 아니라
조몰락거리는 얼음 소리다.
그 소리야말로 유일하게 그들을 위로하는 ‘법의 자장가’다.
법원 위스키는 그래서 태어났다.
법의 무게를 견딘 사람들이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법적 망명지.
한 잔쯤은 괜찮다고,
형량이 아니라 용량으로 재판받는 공간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법”은 늘 무겁고, “술”은 늘 가볍다.
그런데 이 둘이 만나면 묘하게 평형을 이룬다.
무겁던 법이 조금 가벼워지고,
가볍던 술은 조금 진지해진다.
법원 위스키는 그래서 풍자의 결정체다.
권위와 허무, 절제와 방임이 한 잔 안에서 교차한다.
그것은 술이라기보다,
하루치 모순을 삼키는 의식(儀式)이다.
우린 종종 정의를 차갑게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법정 바깥의 세상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실수를 했고, 누군가는 상처를 받았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논리의 망치가 아니라, 위스키의 온기다.
그래서 오늘도 누군가는 말한다.
“법원 갑시다.”
그건 도망이 아니라 휴식이다.
그리고 어쩌면,
진짜 정의는 얼음 위에서 천천히 숙성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법원 위숙히 부거수 夫巨手 아버지의 크고 듬직한 손으로 빚어내서 붙인 이름이다
참고로 헌법재판소 근처에 진짜로 법원이라는 이름의 버번 위스키 전문 바가 있음.
님이 쓴 글임? 굉장히 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