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게 실시간 커뮤니티 인기글
종합 (4532196)  썸네일on   다크모드 on
루리웹-9.. | 25/09/26 15:36 | 추천 7 | 조회 18

[자작유머] 스포) 어쩔수가없다 후기 - "면접 보고 왔어, 면접." +18 [5]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72437678

스포) 어쩔수가없다 후기 - "면접 보고 왔어, 면접."


스포) 어쩔수가없다 후기 - "면접 보고 왔어, 면접."_1.jpg



"여보, 면접보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상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면서,

....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야."




일단 나는 호평.


다만 호불호가 갈리는 것도 이해는 되는 게,

이 영화는 서사적 박진감이나 리얼리티를 기대하며 보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범죄영화라면 만수가 이렇게 멍청하게 살인을 저지르고도 안 잡히는 게 불가능하거든.


애초에 '내가 면접 붙기 위해서 경쟁자를 죽인다!' 라는 서사의 기본 골자부터가 연극적 과장 없이 성립하기 힘들기도 하고. 



주인공 만수의 첫 살인을 우스꽝스럽고 시트콤스럽게 연출한 것도 그래서일 거임.


눈앞에 총이 겨눠졌는데 이런다고 내 마누라가 네거가 되겠냐며 화내는 아저씨라든가


총든 불법침입자 두고 부부싸움하다 죽고 죽이는 중년부부라든가.


이 영화는 마치 연출 자체에서부터 살인의 리얼리티에 집중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듯하니까.





그런데 이런 '서투른 살인'의 코미디 와중 내 시선에 깊게 들어온 특징이 하나 있다면,


바로 '상대의 눈을 본 다음에 죽이는' 만수의 살인행각이 그것.


유만수는 타깃을 제거할 때,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쏴죽일 기회가 있음에도,

총을 가만히 겨눈 채 상대가 자신을 바라볼 때까지 기다리는데


이는 어떻게 해도 리얼한 살인자의 심리로는 해석하기 힘듦.



이는 극중에서도 직접 언급되는 부분인데,

본 글 맨 위의 대사는 만수가 미리에게 살인을 '면접'이라고 얼버무리면서 하는 소리임.


즉 만수는 어설퍼서 실수로 상대의 저항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어쩔수가없이 상대의 눈을 마주한 뒤에만 그를 죽일 수 있다는 거지. 마치 면접을 볼 때처럼.


따라서 이러한 '마주봄'은 일종의 거울 이미지를 노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음. 아니 그렇게 해석해야 서사의 이해가 쉬워짐.




이렇게 볼 때, 만수가 상대를 마주보고 총을 쏘는 것은 거울에 비친 그 자신을 죽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제지 기술자로서의 자존심(구범모)을 죽이고,


일개 종업원이 되더라도 견실하게 책임을 다하려는 사회인으로서의 양심(고시조)을 죽이고,


혼자만의 자유로운 삶과 충동적인 쾌락을 즐기고 싶은 개인적 욕망(최선출)도 죽인다.


(이미 양심(고시조)을 죽인 뒤라 만수는 이 사람을 죽일 때는 저항을 감수하고라도 눈을 보며 총을 겨눈 이제까지와 달리 취해서 꼴게 한 뒤 묻어버리고 강제로 술을 처넣어 죽이는데,

 절주 중이던 만수는 최선출에게 술을 먹여 죽이기 위해 자기 자신의 입에도 술을 넣는다. 이렇게해서 선출의 살해는 그 자신을 살해하는 것과 동일시된다.)




아무튼 이렇게 세 번의 살인으로 자존심, 양심, 욕망을 거세한 만수는 인간다운 삶을 잃은 자본 기계로서 공장에 복귀, 사실상 회사의 도구가 됨.


그렇게 위풍당당(?) 출근해서는 '기계님 일하시는 경로를 피해다니는' 그의 처지는 그가, 정확히는 현대의 노동자가 처한 소외의 현장을 보여주는 연출이지.


농담을 가장해서라도 '싫다'고 말했던 초반 면접씬과 달리,

마지막 면접 씬에서 그는 어떤 부정의 말도 입에 담지 않음.


즉 이 마지막 면접씬은 만수가 '삶을 거세당한 시체'임을 보여주는 장면이 되는 것이며, 자신의 살인을 면접이라고 둘러댔던 만수의 대사는 이 대목에서 의미가 역전되어 면접이 바로 살인이 된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한 사람이 지닌 여러 차원의 인간성을 죽여가며 자본 머신의 부품으로 스스로를 전락시켜야 하는, '어쩔수가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실상.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살인'을 면접의 알레고리로 파악했음.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 (경제적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해 우리 자신을 살해해야 하는 노동자의 애환에 대한 이야기.


마르크스부터 시작해 오늘날까지 주구장창 메들리로 거론되는 '인간 소외'에 대한 우화.


굉장히 진부한 메시지임에 틀림이 없지만,

또 '어쩔수가없다'라는 공허한 넋두리가 아무런 새로운 의미도 생산하지 못하는 진부한 한숨이란 것도 분명하지만,

영화든 소설이든 만화든 이미 세상 천지에 대량생산되는 이야기의 반복이지만,


그런데도 그런 대량생산된 넋두리가 여전히 사람들을 착잡하게 하는, 그 '어쩔 수 없음'까지도 이 영화가 말하려는 바라고 나로서는 생각함.


취향은 많이 갈리더라도 한번쯤은 볼 가치가 있는 영화 아닐까 싶어.




그리고 뭣보다 이병헌 씨를 비롯해 배우분들 연기가 어마어마함. 사실 전반적으로 영화보다 연극에 어울리는 시나리오가 제대로 '영화'로 성립하게 된 건 이 명배우들 공이 7할인 듯.


[신고하기]

댓글(5)

이전글 목록 다음글

1 2 3 45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