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 제갈량이 단순히 연의빨이 아닌 이유

쓰촨성.
그러니까 사천성(파촉지역)에 남아 있는
유비의 묘 겸 제갈량을 모시는 사당.
유비 사후 세워지고 이후 왕조에 따라 제갈량과 합장이 이루어지는 등
이후
명나라 청나라 대에서도 황제들이 보존을 명할 정도로 중요한 유산으로 여겨짐.
단순히 소설빨로 보존된게 아닌 것이
삼국지연의는 원말명초에 쓰여짐.
즉 소설이 뜨기까지
1000년 이상 보존 되었다는 뜻.
연의가 있기 전의 1000년 세월 동안 촉한의 역사는
'패배' 의 역사였다.
단 2명의 군주 밖에 이어지지 않았고 존속기간 역시 40년이 조금 넘어 역사의 뒤안길에 사라진 군주의 묘가
1000년 넘게 현지인들에게 보존 되었다는 것만 봐도
유비와 제갈량이 촉한 지역에 얼마나 선정을 베풀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실제로 이후 중국사 왕조들이 유비, 제갈량을 신경 쓴 것도 사천성 지역의 민심을 잡기 위해서였다고
그래도 이게 얼마나 대단한지 감이 안 잡히는 분들께 예시를 하나 더 들어보자면
여러분 생각해봅시다.
유비의 묘임과 동시에 제갈량을 모시는 저 사당은
'지금' 까지 보존 되고 있습니다.
예.
얘들한테서 살아남았다는 소리임.
문화대혁명 때 저 지역 주민들이 진짜 목숨걸고 사수했었다고 함
청나라 황제들도 엄청 빨아줬으니
일의 성패와 유비와 제갈량의 능력보다는 그들이 하려고 했던 일이 로망이 있다는 걸 높이 샀기에 왜 허구와 진실, 긴 역사 속에서 갖는 크지 않은 의미를 뛰어넘어 아직도 동아시아에서 계속 회자되는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