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소작농민 삶이 비참했던 이유
내용이 너무 길어 복잡하니까 출처를 써보면
부산역사문화대전, 김인호, 「토지조사사업
일반적으로 생각하는거랑 달리 토지조사사업 중 사유지 중에 소유권 인정이 안된건 0.5~3%임
비율상 거짓말하는 사람도 있을테니 문제 없음
진짜 문제는 국유지랑 공공지를 수탈하고 소작권 인정을 안해줌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에간 일본인한테 나눠준건 원래 국가에서 소작민한테 적은 소작료로 임대해준 땅하고 마을 공공지 그리고 기타 국유지를 뺒어서 준거지
일반 농민들 땅 뺒어주지 않았음
손해를 보는 사람들은 소작농으로
그 전에는 소작이 영구계약이여서
일단 한번 계약하면 지주가 끊을수 없고
소작을 지을 권리를 팔수도 있었음
근대 일본이 이걸 인정 안하고
매년 계약하게함
자영업자들 임대료 내는거보면 알수 있지만
매년 계약하면 당연히 쫒겨나면 손해인 소작농들은 빌빌 길수 밖에 없고
소작료는 엄청 올라감
원래 5할이던 소작료가 7~8할이됨
그리고 국유지에서 낮은 소작료로 농사짓던 사람들은 단체로 쫒겨남
이 사람들이 불법으로 지은게 아니라
조선정부가 재정확보에 복지의 일환으로 한거임
결국 대한민국 헌법으로 소작농이 아예 금지됨
근대 지금 자영업자들이 현대판 소작농 아닌가?
자영업자보단 건물주들이지
건물주가 지주고 거기 세입자 자영업은 소작에 가깝지
그게 식민지 조선뿐 아니라 일본 본토에서도 소작농 취급은 개ㅈ이었음
명치유신 하고 나서 일본이 프랑스 민법을 들여왔는데
원래 프랑스 민법은 소작권 조항이 있거든? 근데 유신 지사들이 지주 출신들이라 그걸 빼고 들여옴
그래서 2차 대전 끝날 때까지 인구 7할이 빈곤층 소작농인 운터멘쉬 나라가 일제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