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 않게 한국 바둑계에 큰 영향을 준 대만 아저씨
중국 절강성 출신의 사업가 잉창치(應昌期, 응창기)
국공내전 때문에 공산당을 피해서 대만으로 건너온 이 아저씨는 돈 굴리는 거 하나만큼은 매우 유능한 아저씨였다
반쯤 빈털털이로 피난온 대만에서도 그 능력은 여전했던지라 40대의 젊은 나이에 국립은행인 대만은행 부총재 자리에까지 올랐고
1960년에는 사업도 크게 성공해서 대만 내에서도 손꼽히는 재벌의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이 아저씨는 바둑을 존나 좋아했다
실제로 딱히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는데도 아마추어 7단 수준의 실력을 지녔다고 했을 정도
당시 일본 중국에서 바둑이 엄청나게 유행하고 녜웨이핑(섭위평), 조치훈 같은 괴물같은 기사들이 나오고 있음에도 딱히 바둑 국제대회라고 할 만한 대회는 없었는데
비록 실력은 대회 참가할 수준은 아니라고 해도 대회 열 돈은 썩어 넘쳐났던 이 아저씨는
1988년 자신의 이름과 당시로선 미친 금액이었던 상금 40만 달러를 걸고 응씨배라는 대회를 만들어버린다
잘 해봐야 교류전 수준이었던 이전의 대회들과 다르게 작정하고 국제대회로 여는 만큼 일본, 중국 같이 당시 바둑 최강자로 불리던 나라들은 말한 것도 없고
심지어 당시 변방 취급 받던 대만, 미국, 호주에게조차 출전권을 나눠주면서 진짜배기 국제대회를 열어버림
당연히 국제대회인 만큼 당시에는 듣보잡 그 자체의 취급을 받던 한국기원에게도 출전권 딱 한 장이 부여됐고
상금 40만 달러 + 국제대회 우승을 노리고 수많은 한국 바둑기사들이 저 출전권 한 장을 얻기 위해 피튀기는 경쟁을 펼쳤는데
(왼쪽의 할아버지가 잉창치)
문제는 그 딱 한 장의 출전권을 따낸 사람이 조훈현이었고
다들 알다시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결승까지 가서 당대 최강 기사였던 녜웨이핑을 꺾고 초대 우승자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바둑계의 지각변동을 일으켜버림
이후로도 한국 바둑계가 이걸 계기로 이창호, 이세돌, 신진서 같은 수많은 괴물 기사들을 발굴하고 양성하기 시작했다는 걸 생각하면
그냥 순수하게 바둑이 좋아서 대회 열었던 잉창치는 알게 모르게 한국 바둑계에 큰 업적을 남겨버린 사람이 되어버린 셈
어마어마한 족적이네
ps. 참고로 저 때 조훈현한테 밀려서 탈락한 서봉수는 2회 대회에서 우승함
금액을 잘못 적은 듯
고쳤음
40억 달러면 당시 환율 기준으로도 2.8조원 ㅋㅋㅋㅋㅋㅋ
재벌은 재벌이다 바둑대회 보겠다고 2.8조원을 태우네 ㄷㄷ...
응창기씨
순수한 바둑덕후가 만든 바둑의 세계화
아 바둑잘모르는 나도 들어본 응씨배가 저거구나
그 유명한 응씨배가 저 아죠씨에서부터 시작한거구나
한국 바둑 1인자들은 다 무슨 만화캐릭터 같아 ㅋㅋㅋㅋ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전부 ㅋㅋㅋㅋㅋ
사실 저 셋에 비해서 임팩트만 비교적 덜할 뿐이지 서봉수나 조치훈 같은 기사들도 만만치 않았음
이창호가 너무 해먹어서 나머지가 뭍힐뻔햇다는게 학계의 점심